보건·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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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과 가짜 면역학

면역력과 가짜 면역학

작성일 : 2020-06-01 09:44 작성자 : 메디컬코리아뉴스

요즘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다. 포털 사이트에 면역력을 검색하면 각종 건강기능식품과 한의원 광고들이 화면을 채운다. 면역력을 강화시키면 감염성 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이용해 누군가는 이득을 취하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있다.

면역결핍질환이 있거나 건강이 극도로 나빠서 면역세포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지경의 사람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감염에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해당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특정한 영양소가 결핍되어 면역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여기 해당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으며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문제를 파악해 치료받을 수 있다.

며칠을 굶은 사람은 밥을 먹으면 힘이 강화되겠지만, 끼니를 거르지 않던 사람이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고 해서 평소보다 힘이 더 강화되지는 않는다. 면역력도 마찬가지다. 돈을 쓰고 뭘 먹어서 정상 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는 없다.

면역력을 강화시켜 질병을 예방하는 물질이 있다면 WHO, 질병관리본부 같은 기관에서 권장하고 있지 않았겠는가? 제약회사에서 개발해서 '의약품'으로 허가 받아 판매해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 것이 있다면 의사들이 모든 환자에게 처방하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매일 먹고 있었을 것이다.

면역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과학자와 의사들은 면역력을 강화시켜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개념이 틀렸다는 사실과 그런 효과를 입증한 한약이나 영양제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문가집단이 권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뭐가 몸에 좋은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주장이 진실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누군가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이유는 강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다양하게 진화하다가 인체의 복잡하고 정교한 면역계를 피해나가는 능력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들은 숙주의 면역계를 속이고 피하는 방법이 유전체에 프로그래밍이 되어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명활동을 영위하지 않고 전적으로 숙주 세포에 의존해 번식하기 때문에 숙주의 면역력을 극복할 능력이 없는 바이러스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우리의 면역계가 허술하지만은 않다.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바이러스 중 인간은 극히 일부분에만 감염된다. 인간에게 적응한 바이러스가 아니라면 항체가 생성되기도 전에 선천성 면역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면역계에 대해 숨고, 피하고, 위장하고, 속이는 대응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는 면역계가 미리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백신을 통해 학습시켜야 예방할 수 있다. 면역력을 강화시켜서 막아낼 수는 없다. 바이러스를 잡지도 못하면서 면역반응이 과도해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일부 환자들에게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치명적이 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항바이러스제 외에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한 물질 중 하나는 인터류킨-6(IL-6)를 억제하는 토실리주맙(tocilizumab)이다. 과도한 면역 반응을 차단하면 호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연구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를 이해하기 위해서 분자 수준까지 심층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숙주 세포 표면의 ACE2 수용체 단백질과의 결합을 시작으로 침투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목표물이 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3차원 구조도 밝혀냈다.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항원으로 적절한 부위를 선정해 백신 후보물질을 만드는 실험은 바이러스를 확보하기도 전에 중국에서 발표한 염기서열 정보만 가지고 시작됐다.

아이들은 덜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유를 모른다. 스파이크 단백질을 잘라서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TMPRSS2와 ACE2의 발현량 등 생리학적 차이 때문인지,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덜 눈에 띄는 것인지 등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세포 실험부터 항체검사, 역학조사까지 다양한 층위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왜 어린 아이들은 증상이 경미한가, 왜 여자보다 남자의 치사율이 높은가, 왜 사스와 같은 ACE2에 결합하는데 덜 치명적인가, 왜 사스에 비해서 전염이 잘 되는가 등 단순해 보이는 질문들도 답을 찾기가 매우 까다롭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수많은 전문용어와 면역계를 조절하는 다양한 물질과 세포들을 알아야 한다. 최신 논문들을 읽다보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이런 복잡성을 이해하면 '면역력' 같은 단어는 남을 속이는 목적 외에는 별 쓸모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면역력을 강화시켜주겠다는 자들은 면역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돈을 벌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의사들도 면역력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면역학을 전혀 모르는 허무맹랑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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